청취문화의 지속을 위한 안내서 / by Mullae Resonance

이승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재학 중이며 석사학위 논문 ‹1990년대 이후 국내 노이즈 음악의 위상과 질적 변화에 대한 연구: 소음을 활용하는 국내 뮤지션과 적극적인 청취자를 중심으로›를 작성 중이다.) 

“들리는 게 변하는 게 있거든요. 예전에는 같은 거를 듣더라도 못 들었는데 지금은 들리는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거죠. 안 들렸던 게 들려요. 그러면서 재밌어지거든요. 전에는 안 들렸었는데 왜 지금은 들리지? 그러면 그건 소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거죠. 그러면 이제 그 소리를 재현해보고 싶어져요. 근데 재현하려 하면 또 잘 안 되고. 그러니까 재현해보려고 이것저것 해보게 되는데 그게 재밌어지는 포인트 같아요.” (류한길, 노이즈 뮤지션)

나는 ‘노이즈 음악’에 관한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노이즈 뮤지션들과 청취자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음악적 소리’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경험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뮤지션과 청취자의 구분을 떠나서 대부분 일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고, 나아가 그것을 음악적 실천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설명해준 일상의 소리는 대부분 무심코 지나칠 만한 ‘소음’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이미 그들에게 그러한 소리는 중요한 음악적 재료이자 삶의 일부분으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정규교육의 경험이 있는 국내 뮤지션이 노이즈/즉흥/실험음악으로 음악적 행보를 넓히거나, 청취자들이 직접 연주를 시도하며 청취 활동을 확장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제작하고 연주하는 행위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뮤지션과 청취자들은 대부분 정규 음악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드문 편이었고, 오히려 교육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음악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정규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체화되어 있는 기술적 요소를 우선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기술적으로 우수한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는 소리를 듣는 행위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 잘 듣기 위한 방법으로 직접 연주를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행위가 가능한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만들기 때문에 더 잘 들리거나, 훨씬 더 잘 읽히는 거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듣는 거하고 만드는 거는 정말 달라요. 듣는 것 보다는 만드는 게 백배는 더 재밌어요.(웃음) 그게 별게 아니더라도 만드는 과정이 리스닝에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되거든요. 듣기만 하는 것보다 만드는 거는 듣는 걸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거든요. 그리고 더 뭐랄까... 선입견이 깨지는 것도 있어요. 원리를 모르고 들었을 때는 조금... 노이즈 음악을 듣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음악이다’, ‘음악이 아니다’ 이런 식의 물음이 발생하는 거는 안 만들어봐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만들어보면 너무 간단하게 풀리는 질문이거든요. (이미연, ‹문래 레조넌스› 참여자) 

노이즈/즉흥/실험음악과 같은 음악장르는 듣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듯 보이지만, 정규교육과 기술적 숙련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예술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이를 알리기 위한 제도적 기구의 필요성이 늘 강조되어 왔다. 이미연의 설명처럼,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직접 만들어보는 행위와 청취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적 실천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제도에 안정적으로 발을 디디고 있는 문화적 생산과 소비의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운드 아트’의 범주 아래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 국내에 사운드 아트가 유입된 이후로 대학에는 관련 학과와 사운드 과목을 다루는 수업들이 다수 개설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운드 아트의 재생산에 미치는 영향력을 언급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 이론적 논의를 비중 있게 다루는 일부 예술대학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창작 기술이 더 강조되는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은 대학 교육제도보다는 외부 워크숍 프로그램들의 역할을 더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었다. 특히, 일부 뮤지션과 청취자들은 ‹문래 레조넌스(Mullae Resonance)›에서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는데, 소리의 세계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문래 레조넌스›는 이제 중요한 제도적 자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문래 레조넌스›는 서울문화재단과 문래예술공장의 주최로 2011년부터 매해 진행되어온 사운드 워크숍 프로그램이다. 이 워크숍은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개인이 작업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혼자서는 습득하기 어려운 개념적 논의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되고 있다. 여기에 2015년부터 홍철기가 워크숍 진행을 맡게 되면서, 그가 보유한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성향의 아티스트들이 강사로 초청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이즈/즉흥/실험음악에 대한 미적 이해가 점차 강화되고 있고, 사운드 아트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담론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 역시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워크숍 교육 과정이 입문하는 데에 있어서 되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너무 선입견이 크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워크숍들이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노이즈 사운드 안에서 어떤 정리가 된 개념들을 혼자 발견하기가 사실은 되게 어렵거든요. 특히, 이거는 이론화가 확실히 된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를 접하기에 좋은 루트라 할 수 있죠.” (이미연, ‹문래 레조넌스› 참여자)

“제가 문래에서 워크숍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1회였는데 바이올린으로 뭘 해야겠다고 그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게... 소리 자체에 대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다양한 소리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물에서 나는 소리나 버스 소리, 아니면 여러 가지 소리들... 사실, 그 이전에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이 있어서 미술하는 친구들이랑 잠깐 작업을 했어요. 친구들은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해서 사진 찍는 친구도 있었고, 또 다른 걸로 작업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아무래도 좀 소리 쪽으로 관심이 갔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관심들이 좀 발전되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니까 사운드 워크숍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흥미로워서 그걸 듣기 시작하면서 뭔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음악 활동을)하고 있어요.” (최세희, ‹문래 레조넌스› 참여자)

‹문래 레조넌스›는 ‘사운드아트창작워크숍’이라는 명칭 아래에 운영되고 있다. 위에서 최세희가 미술계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한 것처럼, 사운드 아트는 미술사의 계보와 음악사의 계보 사이에서 점차 독립되어 나온 면이 있어 그 형식이 미술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운드 아트는 설치작품이나 음악의 형태로 구현이 되어도 장르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청각적 생태학과 관련한 사회문화적 범주에 더 가깝게 이해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¹ 2016년 ‹문래 레조넌스›의 주요 테마는 ‘청취의 표면(Superficial Listening)’이었다. 주최 측은 미국의 실험음악 작곡가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가 제안하는 ‘딥 리스닝(Deep Listening)’을 재해석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작곡가가 제시하는 ‘딥 리스닝’ 개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듣기(listening)는 청취문화의 지속을 위한 가장 핵심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이며, 이때 음악은 청취문화에서 가장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술장르가 된다. 

특히, 노이즈/즉흥/실험음악은 사운드 아트와 동격으로 사용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음악의 범주를 ‘소리의 범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사운드 아트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동안 사운드 아트 전시와 다양한 워크숍에서 실험음악 계열의 음악이 강조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운드 아트의 지속성은 소리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현재 어느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한다. 청취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적극적으로 듣는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적 층위에서 창조적 활동을 지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마다 한 번 정도 열리는 미술계 행사가 아닌 지속성을 갖고 운영되는 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래 레조넌스›의 사례는 소리로 관심을 확장하는 이들에게 음악적 활동을 시도해볼 수 있는 토양과 개념적 안내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워크숍이 제가 처음으로 (음악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훨씬 더 듣는 것에 대해서 연습을 많이 하게 된 것 같고. 문래 레조넌스 첫 번째 워크숍에 참가를 했었어요. (…) 그게 확실히 세계가 내가 생각하는 거 이외에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소리의 세계 안에서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다른 차원이 이 안에 있었다는 거죠. 내가 평상시 생활할 때에 느끼고 감각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안에 다른 차원이 계속 있었고, 그 안에 굉장히 흥미로운 애들이 사실은 있어왔다는 거를 알게 되면서 되게 충격을 받았었어요. 그때부터 필드 레코딩을 하게 된 거고. 그리고 전자 기기라든가 그런 사물들이 자기 자체적으로 일종의 주파수를 계속 만들고 있고, 그 안에서 사물들이 우리의 가청 영역에 없는 다른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 사운드로 공간의 맵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 지도는 우리가 생각한 거랑은 완전히 다른 맵이 완성되는 거죠. 그게 굉장히 흥미로웠죠. 그러면서 더 잘 귀 기울여서 듣는 거. 그리고 내가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그런 것도 많이 생각하게 됐고요.” (이미연, ‹문래 레조넌스› 참여자)
  
“저한테 (문래 레조넌스) 워크숍이 되게 중요했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하고도 그게 계속 유지가 됐어요. 서로 개인의 흥미들이 많은 상태여서... 많은 인원들 중에서 또 몇 명이 모여서 우리가 같이 뭔가를 해보자 공연을 해보자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공연장이 너무 없고, 우리가 이런 걸 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마련되지 않는 거죠 자리가. 그래서 몇 번 시도를 했어요. 주기적으로 만나서 이런저런 것들도 해보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댔는데 잘 안 돼서 흐지부지됐어요. 같이 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저는 비교적 흥미를 가지고 있는 상태여서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고 닻올림도 많이 가고. 그런 과정에서 진상태 씨가 그 모임 자체도 알고 계셨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 저도 자주 보고 하니까 (공연) 제의를 하셔서 처음에는 같이 하는 식으로 시작을 했어요. 제가 ‹문래 레조넌스›를 2, 3회 때도 들었거든요. 두 번째 세 번째 때 만났던 사람들이 더 추가되고 하면서 그러면서 진상태 씨가 닻올림에 공연을 해보라 이렇게 얘기를 하셔가지고 하기 시작했죠.” (최세희, ‹문래 레조넌스› 참여자) 

“이런 음악이 저변을 넓히는 방법 중 하나가 워크숍인 거 같더라고요. 공연만 계속 일방적으로 듣게 하는 것보다 같이 하고. 사실 그러면서 연주자도 젊은 친구들이 좀 생긴 거 같고요. 그래서 워크숍의 중요성은 많이 느끼고 있어요. 워크숍은 공연처럼 같이 합시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준용, 노이즈 뮤지션)

※ 이 글의 내용과 인용된 인터뷰는 이승린의 석사학위 논문의 내용과 일부 겹치고 있음을 밝힙니다. 인터뷰 내용은 참여자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였습니다.

1. Labelle, B., Background noise: Perspective on Sound Art, 2006, p.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