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발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인식하며 청취의 표면을 넓혀간 시간 / by Mullae Resonance

조인철
(404의 드러머로 작곡과 드럼 연주를 맡고 있으며, 관습적인 사운드와 연주를 탈피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으며 2013년 제10회 한국 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청취한다는 행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워크숍이었다. 한국에서 음악 교육을 받고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사실 거의 제로에서부터 다시 짚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음악 외의 부분에 있어서도 나의 어떤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취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나 이외의 어떤 것과의 접점을 찾는 것인데 (물론 나의 소리도 들리지만) 태어나서 의식이 생기면서부터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수많은 것들이 나와의 접점을 무자비하게 두드렸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려면 내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져 이미 많은 소리들에 내성이 생겨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주변의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도 정작 청취의 행위는 하지 않는 나를 보게 되었고,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나만의 어떠한 선을 뚫고 들어오는 강한 소리들에만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그 외에는 능동적으로 힘을 내어 청취의 표면을 확장시킬 힘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워크숍 강사였던 토마 틸리는 듣는 힘이 매우 강한 아티스트라고 느껴졌다. 그는 스스로 찾아 들었고, 좋아하는 소리, 들어야 할 소리, 혹은 걸러내야 할 소리를 분명히 했고, 필요할 땐 그 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과 경험도 겸비한 아티스트였다. 중간 중간 그의 사운드 작업을 설명과 함께 듣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어떤 한 공간 안에서 찾아내고 청취행위를 할 수 있는 소리가 정말 다양한 것에 많이 놀랐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그의 자세에도 많이 놀랐다. 며칠 걸려 녹음해서 몇 분 건져내는 식의 방법이 주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임하는 것 같아 보였다. 특히, 개미의 발소리를 녹음한 것을 들었을 때엔 어떤 사명감마저 느껴지기도 했고, 그만의 녹음 기술이나 노하우에 또 한 번 감탄하기도 했다. 청취의 표면적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굳어진 내성과 음악, 언어로만 채워져 있던 나의 표면에는 또 다른 공간이 생겼고, 나만의 어떤 소리적 취향에 따라 그 공간이 확장될 것 같다. 

각자의 청취 행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참가했던 다양한 연령대와 직군의 워크숍 참가자들 또한 나와 비슷한 부분에서 자극을 받으며 커리큘럼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발표 때 탁월한 결과물을 가져오는 참가자들도 몇몇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처음 필드로 레코딩을 나갔을 때 무척 당황해했던 것 같다. 너무 광활한 자유와 선택지가 생겨버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불안함이 깔려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것저것 부딪히고 더듬으며 청취의 표면적을 넓혀 갔다. 사실 이 부분에서 소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많이 느꼈는데, 윌 거스리도 마찬가지이지만 토마 틸리는 일단 소음이라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고, 소리가 소음이 아닌 있는 소리 그대로 가감 없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의 많은 노력도 있었겠지만 이런 넓은 청취의 표면적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 그들의 음악적 토양이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 커리큘럼에서는 참가자들의 레코딩 결과물들로 약간의 짜임을 만든 후 공간에 비해 굉장히 작은 볼륨으로 약 30분간 플레이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은 볼륨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큰 볼륨일 때는 수동적으로 될 수밖에 없던 청취 행위가 작은 볼륨일 땐 능동적으로 바뀌어 오히려 더 많은 소리들을 듣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힘을 내서 그 중에 원하는 소리를 찾아듣고, 질감과 움직임을 분석하게 되며 거기서부터 소리에 대한 어떤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 거스리의 워크숍에서도 소리에 대한 개념 차이가 매우 재미있었던 부분인데, 나를 넘어서 다른 어떤 것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인식의 확장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로 인해 생긴 관계 속에서 나의 어떠한 무언가를 전달을 하고, 민주적인 관계 속에서 각자의 포지셔닝을 해 가며 그렇게 한 사회의 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커리큘럼 초반에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 󰡐악기는 음악󰡑이라는 공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윌 거스리의 방식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 음악이라는 공식이 점점 지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음악 교육을 받고 음악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을 듣고, 연주하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발목을 잡고 있었던 부분인데,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이 공식을 지우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어려웠다. 여전히 어려운 상태이지만 그래도 넘어갈 수 있는 방법들을 이 커리큘럼 속에서 찾게 되어 매우 기뻤다. 윌 거스리가 커리큘럼 초반에서부터 몇 번씩 강조해서 말했던 󰡒좋은 음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커리큘럼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거의 선명하게 다가왔다. 소리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다수, 또는 다수와 다수의 사이에서 내거나 듣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 속에 무언가가 왕래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기에 그 중 좋은 음악과 아닌 음악이라는 판단은 개인의 상대적 기준에 따른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나 무게감을 갖기는 쉽지 않고,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때 중요한 것은 전달하려는 어떤 것이 명료한 소리인가 아닌가, 또 그것을 명료하게 청취해 낼 수 있는가, 또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소리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질문을 그는 참여자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계속 던졌다. 

어떤 좋은 음악적 흐름이나 공식,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전혀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인식하며 청취의 표면을 넓혀갈 수 있도록 두 워크숍을 준비해 준 사운드 아티스트 - 토마 틸리와 윌 거스리, 그들의 풍부한 음악적 토양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