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공진 국제사운드아트 창작 페스티벌 리뷰 / by Mullae Resonance

류한길

문래 레조넌스는 2011년 첫 기획을 시작한 이후로 이제는 문래예술공장의 정기 프로젝트로 충분히 자리매김을 한 듯 보인다.  2017년의 문래 레조넌스(Mullae Resonanace)는 이전까지 진행된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더 확장하여, 기준이 되는 문래 레조넌스 워크숍 프로그램과 함께 소리와 도자기를 이용하여 영국과 한국간의 문화적 소통 가능성을 살펴본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그리고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전자 즉흥 음악 페스티벌인 닻올림픽(Dotolimpic)과 같은 서로 다른 소리와 관련된 기획을 연결하여 2017년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하나의 국제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의 형태로 진행했다. 

예술 감독인 홍철기가 워크숍의 안내 글에서 친절하게 언급했듯이, 이번 문래 레조넌스의 주제인 '소리를 증폭 시키는 몸'의 개념은 우리의 신체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소리를 증폭 시키는 몸이 있다면 소리를 증폭 시키는 공간이 있고 소리를 증폭 시키는 사회가 있으며 소리를 증폭 시키는 국가가 있고 소리를 증폭 시키는 지구가 있다. 

이 말은 모든 사물은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모든 환경은 상호 공진 하는 관계 속에 놓여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어떤 소리를 증폭 시킨다면 그 소리는 주변의 다른 사물에 진동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시각적으로 연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인자인 파동의 영역으로부터 우리가 청각으로 규정하고 경험할 수 있는 주파수의 영역들까지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든 그 자체의 영역에서는 커다란 공진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리에 나카지마(Rie Nakajima)의 소리가 나는 소형 오브제들은 그 시각적 형태와 기능적 측면에서 우리의 의식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실용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동시에 실용적 가치를 떠나 그 오브제 자체가 소리를 증폭 시킴으로서 발생하는 공간의 청각적 풍경은 당연한 공간을 당연하지 않은 특질적인 공간으로 변형 시킨다. 

또한 필 민튼(Phil Minton)의 야생 합창단(Feral Choir)은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몸을 통해 소리를 증폭 시키고 그것을 행하는 몸들의 사회적 함의를 합창이라는 전통적인 음악의 형식을 차용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가 기존의 합창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을 토대로 하여 신체의 내부로 향하거나 또는 신체의 외부 환경에 대한 소리의  재인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 내부의 증폭 기재를 파악하는 만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 비 자연적 환경들 그리고 물리적 조건을 넘어 상호 간에 공진 하는 관계, 즉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에 대한 추상적 인식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연계된 다른 두 기획 행사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문래 레조넌스 페스티벌의 또 다른 기획 프로그램인 메이드 인 코리아는 원래 영국의 도예가인 케이 에이플린(Kay Aplin)과 사운드 아티스트인 조셉 영(Joseph Young)의 프로젝트였다. 케이는 도예가로서 영국의 도자기 산업과 한국의 도자기 산업들 사이에서 동일한 기술적 방법을 적용하면서도 다른 형태와 문화적 표현으로 드러나는 도자기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도자기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한국의 도예가들을 영국의 레지던시에 초청하여 한국의 도예가들은 영국의 도예를 연구하여 반응하고 영국의 도예가는 한국의 도예을 연구하여 반응하는 형태의 전시로 발전하였다. 이 작품들은 영국 도자기 비엔날레에서 공개 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 국가 간의 도자기 문화는 상반된 환경 속에서 발전해 왔으면서도 점토라는 물질에 열을 가해 도자기로 형태가 변형되는, 어찌 보면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했을 때, 국적과 인종을 넘어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원시 기술 자체를 다루는 인식과 태도의 측면에서는 유사한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산업으로 확장되어 정착되기 이전의 도자기, 즉 산업화와 기계화의 과정 이전의 도자기 문화를 생각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영국과 한국이라는 먼 거리의 상반된 문화와는 상관없는 공통된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점을 확인 시켜준다. 

사운드 아티스트는 조셉 영은 한국과 영국의 도자기 제작 공정 중에 발생하는 소리들과 역사적으로 점토를 먼 거리로 조달하던, 이제는 노쇠한 운하의 소리들을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하여 소리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하나의 완결된 작곡 작업으로 변형 시킨다. 시각의 영역을 우리의 가장 주된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망각해버린 소리를 통해 환기되는 공통 기억의 측면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런 시도가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꽤 늦게 시작되었다는 점이 도리어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이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닻올림픽은 서울의 전자즉흥음악 공연장이자 국제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공간 닻올림이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년 주기로 진행하는 즉흥 음악 페스티벌이다. 이미 문래 레조넌스와는 닻올림픽 1회 때부터 연계 행사로서 진행되었고 닻올림픽이 진행되는 해에는 문래 레조넌스 프로그램도 더 풍성한 내용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 페스티벌에는 전세계의 수 많은 실험적 즉흥 음악가들,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모여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거나 또는 기획에 의해 “따로 또 같이”의 방식으로 즉흥적인 조합을 통해 어떤 소리들이 공진 하는 장을 창출한다.

필 민튼이 야생 합창단을 통해 소리를 증폭 시키는 서로 다른 몸들의 사회, 문화적 연결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닻올림픽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소리를 증폭 시키는 몸, 몸과 연결된 오브제(악기)들 자체를 특질 적으로 가꾸어온 사람들의 돌발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가 된다. 리에 나카지마의 소리 나는 오브제들, 필 민튼의 소리를 증폭 시키는 몸들의 관계, 도자기를 파악하면 드러나는 소리의 맥락을 포함할 수 있는 원시적 경험의 동질성 그리고 무언가를 연마하여 특질성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의 느슨한 충돌의 풍경은 모두 소리를 증폭 시키는 몸들의 공진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편으론, 이 글을 읽으면서 아무 곳에나 끼워 맞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나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소리의 맥락 들은 정말로 어느 곳에나 연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인정해야만 한다. 비 시각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소리의 생산성이란 항상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관점에 의해 끝이 안보일 정도로 외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연결성을 감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만드는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런 생각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게 만드는가? 우리가 소리를 통해 실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소리, 더 넓게는 파동의 단계에서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고 이제 시각적 구분의 단계를 넘어 비 가시적인 단계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관계들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여전히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실재적 사실들을 찾아가는 시도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시도들을 실행하면 할 수록 소리의 문제는 더 핵심적인 가치로 재조명될 것이다.